경상남도 창녕은 지리적으로 북쪽에서 대구를 거친 낙동강이 서쪽으로 합천군을 거친 황강과 합류하고 진주시를 거친 남강이 합류하는 낙동강 중하류 변에 위치한 고장으로 넓은 비사벌판을 품고 있고 동쪽으로는 화왕산과 관룡산이 있는 곳에 자리한, 고대 가야국 중 비화가야에 속하는 지역이다.
또한 창녕은 천연늪인 우포(牛浦)늪이 있는데, 이 우포늪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되었으며 잘 보존된 늪으로 가시연꽃, 창포, 부들을 비롯한 각종 수생식물과 고니, 기러기와 같은 겨울철새와 왜가리, 해오라기 같은 여름철새 그리고 황조롱이, 논병아리 같은 텃새 등 다양한 새들의 서식지일 뿐 아니라 수달, 삵, 담비 등 많은 포유류와 파충류 그리고 물방개, 소금쟁이, 잠자리 등 곤충류와 가물치, 붕어, 잉어, 메기 등 수많은 어류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거대한 자연생태박물관이다.
우포늪을 한바퀴 걸어서 도는데는 약 3~4시간 정도 소요되니 가족이나 친구들과 쉬엄 쉬엄 걸으면서 때로는 쉬면서 늪 주변을 즐기기에는 아주 좋다.
특히, 어린 자녀들과 함께 한다면 자연공부를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생각되며 대단히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고 추억이 될 것이다.
우포늪은 화왕산에서 발원한 토평천이 낙동강에 합류하기 전에 형성된 자연습지로 인근에 목포늪, 사지포늪, 쪽지벌 등이 같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들을 모두 합쳐 통상 우포늪이라고 부른다.
우포늪은 습지와 자원을 보전하기 위한 국제환경 협약 기구인 람사르협약에 1998년 등록되었고, 우리나라 환경부에서는 1999년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 보전하고 있다.
우포늪의 다른 이름은 소벌이다. 이름의 유래는 소목마을 소나무숲이 있는 소목산(우항산)이 늪 쪽으로 쑥 들어와 있는데 이 모양이 마치 소가 늪의 물을 마시는 모양이라 해서 소가 물을 마시는 늪 즉, 소벌, 우포늪이라 부른다고 한다.
관룡사는 창녕 화왕산 밑에 있는 관룡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용선대의 석여래좌상과 약사전의 약사불과 3층석탑이 있다.
특히 관룡사는 관룡산을 배경으로 자리해 뒤산 배경이 멋진 사찰로 유명하다.
관룡사에서 한 30분 옆산을 오르면 작은 봉우리를 불단으로 대좌와 대석을 온전히 갖춘 멋진 석여래좌상을 볼 수 있다. 이 봉우리를 용선대라 이름지은 것은 아마 반야용선에서 그 이름을 따온 것이라 추정되며, 불상의 수인은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의 선정인과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으며 전체적인 형상이 석굴암의 본존불을 닮은 관계로 아마 그것을 모방하여 조각한 작품으로 생각된다.
전체적으로 듬직하고 묵직한 인상을 주는 불상으로 현 위치에서 무려 1,200여년간이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창녕지역민들을 굽어 보신 불상이다.
내가 이 여래좌상을 보면서 느낀 점은 경주 남산 미륵곡 보리사터 석여래좌상과 많이 닮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지 여러분도 두 불상을 비교하여 판단해 보시길 바란다.
허나 용선대 여래좌상은 남산 미륵곡 불상과 달리 광배가 없다.
용선대 석여래좌상은 술정리 동3층석탑과 더불어 창녕을 대표하는 자랑스런 문화재이자 국가 대표급 수준의 작품이다.
술정리에 있는 동3층석탑은 국보 34호로 높이가 5.75m인 큰 탑으로 균형미와 웅장함이 잘 조화된 우리나라의 대표 석탑 중 하나이며, 상륜부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잘 보존된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귀중한 석탑이다.
석탑의 규모로 보아 절터가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되나 석탑 외에는 대다수 문화재가 훼손 결실되어 사라져 버린 안타까운 절터라 할 수 있다.
술정리 서3층석탑은 보물 52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크기는 5.1m로 동3층석탑 보다는 작으나 이 석탑은 상륜부를 포함하여 탑의 원형이 다 남아있으나 사리함을 노린 자들의 소행으로 탑을 무너뜨림에 따라 성한 옥개석이 하나도 없다.
동3층석탑도 탑 외에는 다 사라졌고 서3층석탑도 탑 외에는 없으므로 조선시대 창녕지역 거주민들의 문화재에 대한 인식수준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무척 안타까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석탑의 수준으로 보아 상당한 수준의 사찰이 존재를 했었고, 불상. 석등. 당간지주 등 많은 통일신라시대 유적들이 있었을 텐데 어떤 이유에서 인지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라 아쉽기가 그지 없다. 추정컨데는 조선시대 이 지역 유생 나부랭이들과 일제강점기 때 못된 도굴꾼과 장물아비들의 소행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창녕에는 특이한 형태의 인양사 조성비와 송현동 고분 그리고 송현동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창녕 비사벌은 가야시대에 비화가야로 당시 이곳을 지배하던 집단의 고분들이 송현동과 인근에 산재를 하는데, 고분 발굴 당시 지배자의 무덤에서 16세의 어린 소녀의 인골이 같이 발견되어 이를 송현동에서 발굴되었다고 송현이라 이름하여 소개하고 있다.
송현이는 조사 결과 키가 152cm, 나이는 16세로 당시 장례풍습에 따라 지배자가 사망했을 때 같이 순장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며 무릅 뼈가 많이 닳은 점으로 지배자의 시녀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자연환경으로 창녕의 자랑거리는 우포늪과 화왕산이다.
화왕산은 우리나라 최고의 억새 명소 중 하나로 유명한데, 산 정상 분지의 억새에 잡목과 잡풀을 태워 다음 번 억새가 잘 자라게 하고 창녕지역의 농사가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는 행사로 창녕군과 군민들이 함깨하는 행사였으나, 2009년 2월 억새 태우기 행사를 하던 중 바뀐 바람의 방향 때문에 7명이 사망하고 많은 사람들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게 된다. 이 사고 이후 억새 태우기 행사는 중지가 되고, 화왕산 억새를 보러오는 사람들도 많이 줄어들게 된다.
이 사고는 진행하는 사람들이 방화선과 안전거리와 대피로 같은 기본적인 안전에 조금만 더 신경을 썻으면 막을 수 있는 인재였다. 이 자리를 빌어 당시의 사망자 분들의 명복을 빌며, 다치신 분들의 행복한 삶을 기원해 본다.
산 정상에는 신라시대에 조성된 산성이 있는데 이 산성이 화왕산성이며, 임진왜란 당시 의령 출신의 홍의장군 의병장 곽재우 장군의 산성 방어전략 중 하나가 바로 화왕산성이므로 화왕산성은 임진왜란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국란 중 임진왜란과 3.1운동 그리고 6.25전쟁의 위기를 막아낸 역사적인 사건들을 기념하는 영산 호국공원은 우리나라 최초로 조성된 호국공원이다.
창녕 남지에는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옜날 남지철교가 있고 그 아래 넓은 남지유채밭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매년 4월 봄이면 전국 최대규모로 유채꽃 행사가 열리니 기회가 되면 가족과 함께 꼭 참석해 보시기 바란다.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국보 33)는 진흥왕이 561년(진흥왕 22)에 영토 확장을 하고 확장된 영토에 순수비를 세울 때 같이 세운 척경비로 화강암의 앞면을 다음어 글자를 새긴 높이 1.62m의 비석으로, 진흥왕이 창녕의 비사벌 가야를 점령한 후 신료들과 함께 순수(점령지를 살피는 행차)하여 세운 비석이다.
이 비는 원래 창녕읍 목마산성 서쪽 기슭 고분군 옆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조선총독부의 위촉을 받은 일본인이 고적 조사를 함으로써 신라 비석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보고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으며, 현재 창녕읍 교상리 비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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