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은 신라인들에게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산이다.
그 이유는
첫째,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가 태어난 곳이 나정인데 이곳이 남산의 북서쪽 편에 있으며 신라 최초의 궁궐터로 추정되는 창림사터도 남산의 동북쪽 편에 있을 뿐 아니라, 박혁거세를 포함한 5릉과 박아달라왕을 포함한 3릉 등 왕들의 무덤 역시 이곳 남산과 남산 인근에 있어 신라왕조의 영산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남산과 주변 곳곳에 왕실과 백성들에 의해 수많은 사찰과 불상과 탑들이 조성되어져 당시 신라인들의 정신적 안식처 역활을 했던 성지이기 때문이다.
경주 남산의 높이는 채 500m를 넘지 않으나, 결코 작지 않은 산이다.
그것은 경주 남산이 규모에 비해 골짜기가 매우 많아서 이 수없이 많은 골짜기들을 평면에 펼치게 되면, 경주 남산은 엄청 큰 산이 되게 되고 노출된 화강암 바위는 상상을 초월하는 양이 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남산의 실제 표면적은 엄청 큰 산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경주 남산 화강암의 재질은 색깔과 강도 등에서 아주 우수한 화강암으로 인정 받고 있는데, 천년 이상의 오랜 기간 동안 비바람을 이겨낸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며, 오늘날 우리가 당시의 유물들을 다소의 마모는 있어도 노천에서 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3국시대와 고려 그리고 조선시대를 통 틀어도 석물을 조각하는 장인들의 솜씨가 가장 뛰어난 시대는 통일신라 시대이며 이들 장인들의 솜씨에 깊디 깊은 불심이 더해짐에 따라 경주 남산의 조각 불교문화재들의 수준도 매우 우수하다 할 수 있다.
이런 천년 이상의 유구한 역사성과 유물들의 우수한 조각솜씨로 경주 남산은 거대한 노천 야외 박물관으로,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 중 남산지구로 지정되었다.
따라서 경주 남산은 전 인류의 문화유산이며 1995년에 지정된 불국사와 석굴암과 더불어 우리 대한민국의 세계적인 자랑거리이다.
그러나 이 소중하디 소중한 남산의 많은 유물들이 조선시대에 지역민들에 의해 훼손되고, 일제강점기 때에는 많은 반출이 이루어져 큰 아쉬움이 있었으나, 이제라도 우리가 잘 보존하고 소중하게 관리하여 전 세계인들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하여야 할 자산 중 자산인 것이다.
삼릉계곡은 달리 삼릉계, 삼릉곡, 삼릉골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면 경주 남산의 수많은 계곡 중 단일 계곡으로 가장 많은 불교문화재를 가진 계곡은 삼릉계곡이므로 삼릉계곡부터 시계방향으로 남산을 살펴보자.
우선 삼릉계곡 초입의 마애관음보살상으로 출발해 보자.
경주 삼릉은 소나무숲이 매우 뛰어나 소나무를 찍는 사진작가들의 작품활동 장소로도 유명하며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이들은 모두 박씨 성을 가진 왕들이다.
삼릉 바로 아래 편에는 55대 경애왕릉으로 추정되는 무덤이 있는데, 이곳의 소나무도 삼릉에 못지 않게 좋아 신라왕릉의 무덤 중 가장 좋은 소나무 경관을 자랑하고, 우리나라 아름다운 소나무 숲 탑10에 들어갈 정도로 뛰어난 경관의 소나무 숲이다.
신라는 527년 법흥왕이 불교를 공인하고 신라가 멸망하기까지 약 400여년 간 경주 남산은 많은 사찰과 사찰 문화재들이 산재되어 있는 문화재의 보고로 우리나라에서 단일 산으로 가장 많은 문화재를 가지고 있는 불교의 성산이다.
삼한시대 3국 중 가장 늦게 불교를 받아들인 신라이지만, 고구려와 백제에 못지 않게 불교가 왕실을 중심으로 대중들에게 빠른 속도로 전파가 되어 지금의 경주는 점차 불국토가 되게 되는데, 이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이 바로 삼국유사 권제3 제3 흥법편의 원종흥법 염촉위신(원종 즉, 법흥왕이 불법을 일으키고 염촉 즉, 이차돈이 순교하다) 부분에 '사사장성, 탑탑안행. 수법종, 현범경 (寺寺星張, 塔塔鴈行. 竪法㡖, 懸梵鏡) 대소승법, 위경국지자운 (大小乘法, 爲京國之慈雲)'이라 표현했는데,
이를 소개하면 '진흥대왕 즉위 5년 544년에 대흥륜사를 지었다. 547년에는 양나라 사신 심호가 사리를 가져오고, 565년에는 진나라 사신 유사와 승려 명관이 경전을 가져왔다. 이제는 절들이 별처럼 펼쳐져 있고, 탑들이 날아가는 기러기들처럼 줄지어져 있다. 법당을 세우고, 범종을 매어다니 스님들은 세상의 복전이 되고 대승과 소승의 교법은 나라의 자비로운 구름이 되었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삼국유사의 표현을 빌면 신라의 수도 경주는 수많은 사찰과 탑 그리고 스님들이 있어 왕실과 백성들이 모두 함께하는 불국토를 이미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신라와 통일신라의 불교 성지인 남산에는 골짜기마다 지역민들과 왕실과 신료들에 의해 수많은 사찰이 세워지고, 불탑을 세우고 불상을 모시면서 백성들은 남산의 질 좋은 화강암 바위에 다양한 마애불과 불교 장엄조각들을 새겨넣게 되었으니, 남산의 산 천체가 당시의 숨결이 녹아있는 노천박물관이 된 것이며 오늘날까지도 그 숨결이 살아 전해져 오는 위대한 신라불교 역사의 산 현장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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