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폐사지 소개 2 - 절터

민선생 2020. 1. 4. 21:55

 

앞번 절터(폐사지) 소개에 빠진 몇 곳을 더 소개해 본다.

 

 11. 산청 단속사터-

 

 이 절터는 우리나라 선종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찰인데, 그 이유가 우리나라 선종 역사의 초조인 법랑은 중국에 유학을 가 중국 선종 4조인 도신의 법맥을 이은 선사로 우리나라에 북종선을 소개한 스님인데 그의 제자가 신행이며, 이 신행선사가 머문 사찰이 바로 단속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의 입장에서는 법랑은 중국 선종 6조혜능에 앞선 5조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법랑선사에 대한 연구나 예우는 좀처럼 찾기가 어렵다. 한국 선종불교에서도 사대주의의 병폐가 있어 아쉽기 그지 없다.

 우리나라 선종의 역사는 9산선문을 중심으로 남종선의 역사를 내세우는데 이는 이들 산문의 개창조들이 대다수 중국 당나라로 유학을 가 6조혜능의 제자 남악회양의 제자인 마조도일의 문하에 있었던 운수신감(쌍계사 혜소), 서당지장(가지산문 도의, 실상산문 홍척, 동리산문 혜철), 남전보원(사자산문 도윤)의 법맥을 주로 이었고, 청원행사의 문하에 석두희천의 3대손제자 조동종의 동산양개의 제자인 운거도응(수미산문 이엄), 석두희천의 제자 단하천연의 제자인 투자대동(봉림산문 심희) 등의 법맥을 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종선 계열의 이들에 비하면 북종선 계열의 법랑과 신행은 한참 전의 일이다.

 따라서 단속사는 우리나라에서는 최초의 선종사찰이고 그것도 북종선 사찰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사찰 또한 1568년(선조 1)에 산청지역 유생들의 손에 의해 대규모 파괴가 이루어졌는데 이 때 불상과 경판 그리고 고려시대 대감국사 탄연의 승탑비 또한 파괴가 되었던 것이다. 단속사 파괴에 참여한 이 지역 유생들 중 나의 성씨인 여흥민씨를 가진 유생이 있었으니 부끄럽기 그지 없다.

 

산청 단속사터 동서3층석탑(보물 72. 73호)- 빼어난 균형미의 멋진 통일신라 석탑이며 앞 당간지주 쪽이 사찰 입구이고 뒷 마을이 훼손된 금당 터이다. (아랫마을을 건너서 당간지주가 있음)

 

단속사터 당간지주- 크고 멋진 당간지주로 이곳이 사찰 입구이고 뒤에 보이는 앞 마을이 일주문과 천황문 터이며 마을 뒤에 동서3층석탑이 있고 석탑 뒷 마을이 전각들 터인데 지금은 모두 훼손되고 당간지주와 석탑만이 남아 통일신라시대 넓은 이 절터의 흔적만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불교종파 중 선종의 역사에서 남종선만이 존재하게 되는 사유는 이렇다.

 9산선문 중 다른 산문과 달리 국내파인 희양산문의 개산조인 도헌은 법맥을 중국선종 4조도신의 법을 받은 5조법랑- 신행- 준범- 혜은에 두었고, 그의 제자 양부까지는 북종선의 법맥을 이었으나 긍양에 이르러 중국선종의 흐름과 국내 선종의 흐름에 결국 남종으로 돌아서게 됨으로써 북종선은 우리나라 9산선문에서 사라져 버렸다.

 따라서 우리나라 선종의 소의경전도 능가경(여래장사상과 유식사상)은 배제되게 되고 금강경(공사상과 반야사상)을 중시하게 된 것이다.

 

 

 

12. 울주 간월사터-

 

 언양 등억온천 단지에 있는 이 절터는 신라 진덕여왕 때 자장대사가 지은 사찰로 유물로는 마모가 심하나 균형미가 있는 통일신라시대 작품인 석여래좌상(보물 370)이 있고, 훼손이 심하지만 나름 잘 복원된 동 시대의 2기의 3층석탑이 당당하게 서 있는데 몸돌에 문비가 뚜렷하고 좌우에 인왕상이 양각으로 멋지게 새겨져 있다.

 탑의 조성시기나 조각솜씨 그리고 탑의 규모와 쌍탑인 점 등의 이유로 당연히 보물로 지정되어야 할 소중한 문화재임에도 아직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아쉬우며, 조만간 보물로 지정되기를 기대해 본다.

 신불산 등산을 할 때 이 곳을 같이 둘러보면 좋을 것이다.

 

울주 간월사터 3층석탑- 신불산을 배경으로 한 간월사터에 자리한 쌍탑으로 몸돌에 세겨진 조각 솜씨기 매우 뛰어나다.

 

간월사터 석여래좌상(보물 370)- 마모는 심하나 균형미가 있고 일체를 갖춘 석여래좌상이다.

 

 

13. 양양 진전사터-

 

 설악산 화채봉 동쪽편에 위치한 진전사는 9산선문 중 가지산문의 개산조인 도의선사가 마조도일의 제자 서당지장의 법맥을 이어 받고 귀국하였으나 당시 신라가 선종을 받아들일 여건이 되지 않아 경주에서 한참 먼 설악산 산속으로 들어가 창건한 사찰로 제자는 염거화상이다.

 문화재로는 멋진 조각들로 장엄이 되어 더 멋있어 보이고 볼거리가 많은 진전사터 3층석탑(국보 122호)

이 있는데 1층 기단의 비천상, 1층 몸돌 4면에 새겨진 여래좌상, 2층 기단의 8부신중 등 뛰어난 조각솜씨의 화강암 석탑으로 설악산의 정기를 받아서인지 기품이 넘치는 검은색을 띈다.

 

양양 진전사터 3층석탑(국보 122)- 기단부의 8부신중과 몸돌의 여래상 조각이 매우 뛰어난 석탑이다.

 

도의선사 추정 승탑(보물 439)

 

도의선사 승탑에 따라온 개- 도과에 오른 듯한 견승

 

 그리고 석탑이 위치한 곳에서 한참 위로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진전사가 있다.

 내가 방문했을 때 마침 노스님의 염불소리가 들렸는데 너무나도 편안하게 들려 석탑을 찾아 오르고 석탑을 둘러보는 동안 나 자신이 자연스레 경건해졌었던 기억이 있다.

 사찰 못 미쳐 오른쪽 언덕 위쪽에 대한불교조계종에서 종조로 받드는 가지산문의 개산조인 도의선사의 것으로 추정되는 승탑이 있다.

 이 승탑의 양식은 석탑양식의 기단부와 탑신을 가지고 있는 독특한 형태의 승탑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승탑일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이 승탑을 둘러볼 때 어느 새 흰 진도개 2마리가 올라와 한 켠에 앉아 있어 깜짝 놀랐었었는데, 가만히 보니 순하게 생겼는데다가 그 앉아 있는 자세가 2마리 다 처연하기가 이를 데 없어 마치 아라한과에 든 개 같았다. 

 

가지산문의 개창조 도의선사의 제자인 염거화상탑(우리나라를 대표하는 8각원당형 승탑- 국보 104호)으로 일본인에 의해 반출이 시도되면서 원 자리를 떠난 승탑으로, 반환한 일본인이 흥법사터에서 반출하였다 하나 현재 흥법사터에 승탑자리가 없고, 특히 흥법사터는 인근 민가에서 조차 절터와 절터의 석물들을 집 건축 자재로 사용하는 등 너무 많은 훼손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지금와서는 더 더욱 알 길이 없다.-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전시

 

 

 14. 인제 한계사터-

 

 설악산 장수대와 가리봉 등 산군들의 경치가 너무나도 멋진 자리에 위치한 한계사터는 절에서 보는 앞 경치가 좋기로는 영주 부석사와 설악산 오세암에 못지 않은 것 같다.

 이 석악산 첩첩산골 이 높은 곳에 절을 짓고 석탑과 불상을 조성했다고 생각하니 그 옛날 조상들의 대단했던 신심이 느껴진다.

 이 절터에 있는 유물로는 절터 윗쪽에 북3층석탑(보물1276)이 있고 남쪽 절터에 남3층석탑(보물 1275)이 있으며, 남쪽 절터에는 석축과 석불대좌, 연화석 등이 남아있다.

 이 절터와 유물은 다시 생각을 해봐도 이렇게 깊디 깊고 높디 높은 산속에 어떻게 그 무거운 돌들을 옳기고 다듬고 했는지...

 

한계사터 입구 한계령 길에서 바라 본 산의 멋진 모습

 

한계사터 윗쪽 북3층석탑(보물 1276)

 

아랫쪽 한계사터와 남3층석탑(보물 1275)- 뒤에 보이는 바위 산너머에 백담사가 있다.

 

 

 15. 경주 감은사터-

 

 2019.7.4일 일본 아베정부의 반도체 관련 수출핵심품목 규제 기습공격으로 또다시 많은 국민들이 공분을 느꼈었다.

 문무왕이 오죽했으면 죽어서도 왜구들을 격퇴할려고 경주 앞바다 동해 감포에 수중릉을 만들었으며, 효자인 신문왕이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바닷가 인근에 감은사를 만들어서 부처님의 힘을 빌려 왜구를 물리치려 하였겠는가, 대를 이은 호국사찰이자 효사찰인 것이다.

 감은사터에 있는 2기의 동.서 3층석탑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쌍탑으로는 가장 큰 탑으로 거대하다.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균형잡힌 몸매에서 풍기는 기상이 참으로 웅대하다.

 신라인들의 멋진 솜씨와 기백이 외부로 우러나는 탑으로 통일신라시대 초기의 석탑이며, 우리나라 3층석탑을 대표하는 탑이라 할 수 있다.

 아마 왜구들이 이 탑을 직접보면 아마 기가 죽어 오줌을 지리지 싶다.

 삼국유사에 보면 많은 왕들의 기록에 수많은 왜구들의 지속적인 침탈이 있었으며, 왜구들의 침입은 고려, 조선시대를 이어져 와 결국 3포왜란을 거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이어졌을 뿐 아니라, 결국에는 요시다 쇼인쇼카손주쿠문하(이 문하의 사상은 대단한 것이 없다. 부국강병의 국가건설을 주창하여 훗날 악의 축이 되는 대동아공영론의 토대를 제공했을 뿐이다)의 조슈번(야마구치 현)세력과 사쓰마번(가고시마 현)이 주가 된 메이지유신 성공세력들에 의해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치욕적인 강제합병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 아마가타 아리토모,  기시 노부스케(아베 총리 외할배- 만주국에서 수탈자)등 요시다쇼인 문하의 야마구치 세력들과 아소 다키치(아소 다로 부총리의 할배- 강제징용자 고용한 아소탄광 주인)의 침략근성은 변하지 않은 것이며,

 이번 반도체 핵심소재 공격도 과거 이들의 침략근성과 절대 다르지 않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다시 한 번 이야기 하지만 아베를 포함한 이들 왜구들의 침략의 역사는 1,500년 이상 계속되었고 지금도 수시로 틈을 노리는 참으로 음흉한 자들이다.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 애들은 이런 일본의 본 모습을 잘 알지 못하나,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이 일본이라는 나라의 도적질하는 습성과 침략하여 약탈하는 근성 즉, 못된 원숭이 습성을 잘 알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 국민들은 항상 일본을 경계하여 두 번 다시는 치욕적인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만약 이들이 다시 침공한다면 그때는 일본 열도를 완전 아작을 내어 본때를 보여야 할 뿐 아니라 지난 1,500년 역사의 빚(통일신라. 고려 시대부터의 왜구, 임진왜란. 정유재란, 한일강제병합 등 피해- 현가로 수 천조의 피해)을 갚게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본을 먼저 절대 침략하지 않지만, 그들이 반성하지 않고 과거를 반복한다면 정의의 불벼락 맛을 보여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아작을 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웃이라는 게 참 더러운 근성을 가진...

 

 

통일신라의 기상이 빛나는 감은사터 동서 3층석탑(국보 112호)- 볼매 석탑

 

 

가까이서 본 동서 3층석탑- 가까이서 봐도 볼매

 

 

감은사터 동3층석탑 사리장엄구(보물 1359)- 준 국보급 문화재이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먼저 발굴된 서3층석탑 사리장엄구(보물 366)는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한 장소에 전시되어 보존되어야 할 사리장엄구가 지금은 서울과 경주에 분리되어 보관 전시되고 있으나, 동3층석탑 사리장엄구를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속히 이관하여 감은사터 동서3층석탑처럼 함께 한 장소에 전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포 이견대에서 바라 본 문무대왕 수중릉

 

경주 감포 이견대- 감은사를 드나들던 용이 나타난 곳이며, 신문왕이 용으로부터 받은 옥대와 만파식적을 만들 대나무를 얻은 전설이 있다.

 

 

 16. 경주 원원사터-

 

 김유신 장군이 문두루비법으로 유명한 명랑법사의 제자인 안혜, 낭융과 함께 세운 호국사찰

 절터에는 훼손이 심한 동서 3층석탑이 있으며 상층기단 몸돌 4면에 12지신상이 연화좌위에 새겨져 있고, 1층 몸돌에는 4천왕이 조각되어 있는데 매우 도드라지게 양각이 되어 있다.

 12지신상은 석탑조각으로는 매우 이례적이며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한다.

 조각 솜씨 또한 매우 뛰어난 석탑이며 양 석탑 사이에는 화사석이 유실된 석등이 자리하고 있다.

 

원원사터 동서3층석탑(보물 1429)

 

 

 17. 경주 장항리절터-

 

 불국사에서 석굴암으로 가다 양북면 감포 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왼쪽 계곡너머 절터와 석탑 등 석물들이 보인다.

 서쪽 5층석탑은 1층 몸돌 4면에 문비와 인왕상이 새겨져 있는데 그 조각 수준이 분황사의 그것에 비길만 한 웅장한 탑이고, 동쪽 석탑은 계곡 아래 무너져 있던 것을 복원해 놓았으나 그 훼손 정도가 매우 심하다.

 그리고 역시 훼손이 심한 불상대좌가 있는데 불상은 완전히 부서진 것을 상반신만 복원하여 국립경주박물관 야외 뜰에 옮겨 전시하고 있다. 이 돌의 색깔은 주위의 다른 불상에 비해 그 색이 살색에 가까워 눈에 확 띈다.

 장항리 유물들이 훼손이 심한 이유는 일제강점기 때 이곳 주위에서 공사를 하던 인부들이 불상과 석탑의 사리장엄구를 노려 다이너마이트로 폭파를 시키는 바람에 석탑과 불상의 파편들이 계곡아래로 굴러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 유물을 볼 때마다 나라를 빼앗긴 아픔이 생각난다.  나쁜 일본 시끼들!  칵 마~!

 

장항리 절터 서5층석탑(국보 236)- 높이 9.1m의 큰 탑으로 1층 몸돌에 문비 조각과 이를 지키는 인왕상 조각이 4면에 양각으로 매우 잘 새겨져 있는 멋진 탑이다.  뒤에 보이는 몸돌이 없는 많이 훼손된 탑이 동5층석탑이며, 장항리 절터에서 한 컷 한 필자

 

장항리 절터 석불입상- 국립경주박물관 전시, 돌 색깔이 화강암치고는 살색이 돈다.

 

 

 18. 경주 용장사터-

 

 산 전체가 야외박물관인 경주 남산에서 가장 큰 계곡인 용장곡 위쪽에 위치했었던 용장사의 터에 남산바위를 기단으로 한 3층석탑과 마애여래좌상 그리고 석여래좌상이 있다.

 

남산을 기단으로 한 용장사터 3층석탑(보물 186)- 수차례 사리장엄구를 노린 도굴꾼들에 의해 도괴되어 파손이 되었던 아픔이 있는 탑이다.

 

 

 용장사는 한국 유가종의 시조이자 성유식론학기 등 100여 권의 책을 저술을 남긴 유식학의 대가로 원효스님과 더불어 우리나라 불교역사 상 가장 위대한 저술가로 손꼽히는 대현스님이 머물던 사찰이다.

 삼국유사 권제4 제5 의해편에 보면 유가종의 조사인 대덕 대현이 남산 용장사에 살았는데, 절에 돌로 만든 장륙상의 미륵보살이 있었는데 대현이 이 미륵상의 주위를 돌면 미륵상 또한 대현을 따라 얼굴을 돌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용장사터 3륜대좌에 모셔진 석여래좌상(보물 187)과 뒤쪽에 보이는 마애여래좌상(보물 913)

 

 그리고 용장사는 조선초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남산의 또 다른 이름이 금오산임)를 쓴 매월당 김시습(부여 무량사에서 입적)이 금오산실을 짓고 머문 곳으로도 유명하다. 

 

 19. 강릉 신복사터-

 

   신복사터에는 웅장하면서도 고려시대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3층석탑과 강원도 강릉지역 만의 특징인 석보살좌상(둥근 보관에 살찐 턱을 가진 보살상)이 있다.

 

신복사터 3층석탑(보물 87)과 석보살좌상

 

강릉 신복사터

 

신복사터 석보살좌상(보물 84)- 강원지역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유물이다.

 

평창 오대산 월정사 8각9층석탑 앞에 모셔저 있던 석보살좌상(국보 48-2)- 현재는 월정사 성보박물관 안에 모셔져 있다.

 

국립춘천박물관 내에 전시되어 있는 한송사 석보살좌상(국보 124)- 강릉 한송사터에서 일본인에 의해 1912년 일본으로 반출되어 도쿄국립박물관으로 갔다가 1965년 한일협정 조인으로 우리나라에 되돌아 온 사연이 많은 소중한 유물이다. 

 

 

 20. 양주 회암사터-

 

 고려 말 조선 초기에 가장 중요한 사찰 중 하나인 회암사지공선사와 그의 제자 나옹선사 그리고 태조 이성계와 절친사이이자 스승인 무학대사의 부도와 석등이 산 위에서 아래로 순서대로 놓여 있다.

 

양주 회암사터 상단부 전경- 고려의 수도 개성과 조선의 수도 서울이 모두 가까운 절터이다.

 

회암사터 지공선사 부도, 석등 및 부도비

 

회암사터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

 

  나옹선사는 원나라 지공선사로 부터 법을 전수받고 귀국하여 공민왕 태후의 요청으로 여러 사찰에서 법을 전하다가 무학대사에게 법을 전한 고려말 스님으로 이곳 회암사에서 1361년 주지가 되어 법회를 열어 명성이 매우 높았으나, 기울어 가던 고려말의 혼란스런 상황에서 나옹선사의 교세를 견제하기 위한 왕명에 의해 밀양(당시는 밀성임)의 영원사로 가던 중 1376년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하게 된다. 

 

회암사터 무학대사탑(보물 388) 및 쌍사자석등(보물 399- 조선시대 쌍사자석등으로 쪼그려 앉은 사자가 화사석을 받치고 있는 모양이다.)

 

 무학대사는 나옹선사의 법을 전해 받았으며 태조 이성계와 친분이 두터운 스님으로 태조와 함께 한양으로 도읍을 정하는데 기여하게 된다.

 1393년(태조 2)에는 회암사에 지공과 나옹의 사리탑을 건립하였고 한때 태조의 명으로 회암사에 머무르기도 했으며, 그의 제자로는 함허당 득통기화스님이 있다. 

 무학대사의 사리탑은 입적 후 태종의 명으로 건립되게 되었다. 

 

회암사터 승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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