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마지막으로 남한에서 경주지역 다음으로 불교문화재가 전 지역에 많이 산재해 있는 경상북도를 찾아간다.
그런데 강원도 지역이 빠진 것은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마애불이 가장 없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자연이 조각한 멋진 바위들이 너무 많아서 사람들이 감히 엄두를 내지 않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설악산 천불동 계곡 1개만 해도 무려 1,000개(?~)의 부처가 있는데 굳이 사람들이 그것보다 못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목숨 걸고 바위에 메달려 징과 망치를 들고 쫏아 댈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이곳의 바위가 여간 커야 말이지..
1. 구미 황상동 마애여래입상-
구미시 황상동 공단지역에 있는 솔매고개 언덕편 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입상(보물 1122호)은 그 크기가 약 7m로 매우 큰 마애불이다.
이 불상은 설법인의 수인을 한 채 가슴부위를 가리고 있으며 풍만한 몸매에 미색의 화강암 피부를 가지고 있는 관계로, 불경스럽지만 나는 구미 황상동 마애불을 '미세스코리아 마애불'이라 부르고 싶다.


2. 구미 금오산 마애여래입상-
경상북도 구미시의 진산 금오산 7부능선 등산로 옆 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입상( 보물 490호)은 크기가 5.5m쯤 된다.
이 불상은 바위 모서리에 새겨진 것으로 두광과 신광이 선형으로 새겨져 있으며, 유달리 긴 손은 여원인과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귀가 매우 크게 조각되어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구미 지역민들의 목소리를 잘 들어서 도움을 준다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 같다.


금오산 마애불을 보기 위해서는 등산을 해야 하는데 다행이도 케이블카가 있어 산행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금오산 마애불을 볼 때 이왕이면 산 정상인 현월봉과 도선굴 그리고 약사암과 산 아래 금오산저수지를 같이 둘러보면 좋을 것이다.









3. 문경 희양산 봉암사 마애보살좌상-
문경 희양산 봉암사계곡에 위치한 백운대 바위벽에 새겨진 보살상으로 크기가 약 5m쯤 된다.
이 마애보살상은 9산선문 중 희양산문인 봉암사가 '부처님 오신날'에만 산문을 개방하므로 이 날에만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이곳은 절에서 약 20분 정도 계곡을 따라 산을 올라야 된다.
감실은 바위를 깍아 만들었는데 이것이 저절로 광배가 되었고, 얼굴은 눈썹과 코를 상대적으로 깊게 파 작은 입술과 대조를 이룬다. 백호도 매우 뚜렷하다.

이 마애보살좌상은 천태종 개조인 대각국사 의천의 원불이라 한다. 그 시대 쯤의 작품이니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이곳이 대각국사 이전의 9산선문 선종사찰이고 보살상의 손에 연꽃봉우리가 들려 있는 관계로 선종의 모태가 되는 부처님께서 법을 이심전심으로 전한 '염화미소'의 주인공인 대가섭(마하카샤파)존자를 상징하는 선불교의 상징적 조형물이 아닌가 싶다.
아니면 연꽃을 든 부처님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고, 그 의미를 안다면 누구든지 법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로, 그러면 마애불의 이름도 봉암사 마애여래좌상이 된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








4. 안동 옥산사 마애약사래좌상-
안동 옥산사 뒤쪽 바위벽에 새겨진 약사여래좌상으로 크기는 작으나 연화대좌에 앉아 우견편단의 법의를 한 잘 생긴 미남 약사불이다.
통일신라 시대 석공 장인의 솜씨를 볼 수 있는 마애불이다.
옥산사까지 가는 길은 도로 폭은 좁은데 산으로 많이 올라가야 하므로 운전할 때 조심해야 된다.



5. 안동 이천동 마애불-
안동시 이천동에 있는 큰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로 머리부분은 별도로 만들어 올린 형태이다.


6. 대구 동화사 마애여래좌상-
통일신라 5악 중 중악에 해당하는 대구 팔공산 동화사에 있는 마애여래좌상(보물 243호)은 앉은 자세가 오른쪽 다리를 아래로 살짝 푼 반 유희좌인 것이 특이하고, 수인은 항마촉지인을 한 채 구름문양의 대좌에 앉아 계신다.
이 마애불은 동화사 일주문 오른쪽 바위에 새겨져 있는데, 현재 주차장을 경유한 사찰의 출입구에서는 아래로 제법 내려가야 볼 수 있다.
크기는 작으며 조금 높은 곳에 새겨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다.


동화사에는 좋은 보물 문화재가 많은데, 현 주차장쪽 사찰 입구에서 마애불을 보러 가는 길에 있는 당간지주, 도학동 석조부도, 금당암 동.서3층석탑 그리고 비로암에 있는 문화재인 3층석탑과 석비로자나불좌상 사진도 함께 올리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7. 칠곡 노석리 마애불상군-
경상북도 칠곡군 노석리에 있는 마애불상군(보물 655호)으로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협시불은 관음과 대세지보살이다.


8.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경상북도 봉화군 북지리에 있는 마애불좌상(국보 201호)으로 약 4m가 넘는 크기의 불상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다.
마애불의 조각은 전체적으로 큼직막한 느낌이 드는 수작으로 인근에서 발견된 미륵반가사유상 하반신의 조각 솜씨와 유사한 느낌(크게 각을 하면서도 전체적으로 균형미가 있고 수려한 느낌이 드는 조각솜씨)이 든다.
통견에 항마촉지인 수인을 하고 있으며 두광과 신광에 화불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 또한 조각이 잘되어 있다.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자리는 큰 절터로 인근에 27개의 절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이곳 바로 인근에서 발견된 북지리 석조반가상 하반신 석물은 북지리 마애여래좌상과 더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문화재이다.
크게 크게 그러나 수려하게 조각한 솜씨가 돋보이는 이 지역 특유의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이 반가상 석물의 의미는 우리 대한민국 불교문화재 중 국보 중 국보인 금동반가사유상(국보 83호)과 옷주름이나 하반신의 형태가 거의 유사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국보 83호가 백제의 것이냐 신라의 것이냐로 전문가 사이에 많은 논쟁이 있었으나, 비록 아마추어이지만 내 생각에 이 문화재는 당연한 신라의 작품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는 우선 하반신의 형태와 옷주름이 굵고 크게 조각이 된 것이 동일한 장인집단이 만든 작품으로 추정할 수 있을 정도로 유사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이렇게 큰 석물은 옮길 수 없기 때문에 출토지가 신라 지역인 봉화라는 결정적 증거 때문이며, 세째는 국보 83호와 형제처럼 닮은 일본 국보문화재인 교토 고류지 목조미륵반가사유상이 일본서기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도래인인 진하승이 이 사찰 승려이고, 신라에서 불상을 모셔왔다는 기록과 이 나무의 재질이 우리나라 동해안 지역의 소나무인 적송이라는 사실 때문일 뿐 아니라, 네째는 백제 지역에서는 이와 같이 크고 시원하게 비 대칭적으로 옷주름을 조각한 반가사유상 유물이 나온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서산 마애3존불의 협시불인 반가사유상의 옷주름은 좌우가 대칭적인 단순한 옷주름으로 봉화지역의 옷주름과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고 크기도 작다.
이런 결정적인 몇가지 이유에도 불구하고 국보 83호인 금동반가사유상이 백제의 솜씨라고 계속 주장하는 저명한 문화재 전문가가 있는데 ,이것만은 그 학자가 증거를 무시한 사변적인 주장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하튼 학자는 고집이 조금 세야 되나 보다..

9. 영주 가흥동 마애3존불-
경상북도 영주시 가흥동 도로변에 있는 마애여래3존상(보물 221호)은 주존불의 원형 광배에 연화문과 화불이 바깥쪽에는 화염문이 조각되어 있으며, 수인은 여원인과 시무외인을 하고 있다.
3존불은 모두 굵고 크게 조각하여 기품이 있어 보이는 수작이나, 불상의 눈을 누군가가 파버려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아마 조선시대에 마을 사대부나 주민들이 이렇게 했지 싶다.
자기마을 문화재를 지키지는 못할 망정 성리학 이데올로기가 무엇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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