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마애불 - 경상북도

민선생 2020. 3. 2. 17:25

 

 이제 마지막으로 남한에서 경주지역 다음으로 불교문화재가 전 지역에 많이 산재해 있는 경상북도를 찾아간다.

 그런데 강원도 지역이 빠진 것은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마애불이 가장 없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자연이 조각한 멋진 바위들이 너무 많아서 사람들이 감히 엄두를 내지 않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설악산 천불동 계곡 1개만 해도 무려 1,000개(?~)의 부처가 있는데 굳이 사람들이 그것보다 못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목숨 걸고 바위에 메달려 징과 망치를 들고 쫏아 댈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이곳의 바위가 여간 커야 말이지..

 

1. 구미 황상동 마애여래입상-

 구미시 황상동 공단지역에 있는 솔매고개 언덕편 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입상(보물 1122호)은 그 크기가 약 7m로 매우 큰 마애불이다.

  이 불상은 설법인의 수인을 한 채 가슴부위를 가리고 있으며 풍만한 몸매에 미색의 화강암 피부를 가지고 있는 관계로, 불경스럽지만 나는 구미 황상동 마애불을 '미세스코리아 마애불'이라 부르고 싶다.

 

내가 '미세스코리아 마애불'라 이름 붙인 구미 황상동 마애여래입상- 오목한 사타구니와 풍만한 다리 그리고 온화한 미소가 아주 잘 어우러지는 마애불이다.

 

구미 황상동 마애여래입상 원경- 언덕 아랫마을을 자비심으로 내려다 보고 계시는 모습이다.

 

 

2. 구미 금오산 마애여래입상-

 경상북도 구미시의 진산 금오산 7부능선 등산로 옆 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입상( 보물 490호)은 크기가 5.5m쯤 된다.

 이 불상은 바위 모서리에 새겨진 것으로 두광과 신광이 선형으로 새겨져 있으며, 유달리 긴 손은 여원인과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귀가 매우 크게 조각되어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구미 지역민들의 목소리를 잘 들어서 도움을 준다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 같다.

 

금오산 7부능선에 자리한 마애여래입상- 귀와 손이 상대적으로 크다, 구미시를 내려다 보고 서있다.

 

오른쪽에서 본 마애불

 

 금오산 마애불을 보기 위해서는 등산을 해야 하는데 다행이도 케이블카가 있어 산행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금오산 마애불을 볼 때 이왕이면 산 정상인 현월봉과 도선굴 그리고 약사암과 산 아래 금오산저수지를 같이 둘러보면 좋을 것이다.

 

금오산 정상 현월봉 표지석

 

산에서 내려다 본 구미시

 

금오산 마애불과 산 정상을 오르는 길에 있는 대혜폭포- 비가 오면 물이 있는 폭포로 평소에는 실타래 같은 가는 물줄기가 흘러 내린다.

 

금오산 도선굴 안에서 보이는 경치- 굴 안이 제법 넓다. 한국 풍수의 대가인 도선스님이 이곳에서 수도하였다 하나 그건 ?이 듬~

 

도선굴로 가는 길

 

금오산 약사암- 바위 절벽에 조성된 사찰로 앞으로 탁 트인 전망이 시원하다

 

금오산 케이블 카

 

금오산 저수지

 

구미 금오산 소나무

 

3. 문경 희양산 봉암사 마애보살좌상-

 문경 희양산 봉암사계곡에 위치한 백운대 바위벽에 새겨진 보살상으로 크기가 약 5m쯤 된다.

 이 마애보살상은 9산선문 중 희양산문인 봉암사가 '부처님 오신날'에만 산문을 개방하므로 이 날에만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이곳은 절에서 약 20분 정도 계곡을 따라 산을 올라야 된다.

 감실은 바위를 깍아 만들었는데 이것이 저절로 광배가 되었고, 얼굴은 눈썹과 코를 상대적으로 깊게 파 작은 입술과 대조를 이룬다. 백호도 매우 뚜렷하다.

 

봉암사가 있는 희양산계곡의 백운대에 있는 바위에 새겨진 보살입상- 연꽃 봉우리를 들고 있으며, 법의는 선각으로 표현한 통견이다.

 

 이 마애보살좌상은 천태종 개조인 대각국사 의천의 원불이라 한다. 그 시대 쯤의 작품이니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이곳이 대각국사 이전의 9산선문 선종사찰이고 보살상의 손에 연꽃봉우리가 들려 있는 관계로 선종의 모태가 되는 부처님께서 법을 이심전심으로 전한 '염화미소'의 주인공인 대가섭(마하카샤파)존자를 상징하는 선불교의 상징적 조형물이 아닌가 싶다.

 아니면 연꽃을 든 부처님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고, 그 의미를 안다면 누구든지 법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로, 그러면 마애불의 이름도 봉암사 마애여래좌상이 된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

 

부처님오신날에 새벽부터 이곳 마애보살상을 방문한 사람들이 희양산 백운대바위 계곡에 앉아 쉬는 모습

 

희양산 계곡

 

봉암사 3층석탑과 희양산- 9산선문 중 희양산문

 

경내의  지증대사 승탑- 희양산문 개산조인 도헌의 승탑(보물 137호)- 9산선문 중 당나라에 유학을 가지 않은 유일한 국내파 북종선 개산조이다.

 

지증대사탑비(국보 315호)- 비문을 고운 최치원이 지었다(최치원의 4산비명 중 하나)

 

봉암사 뒷산에 있는 정진대사 승탑(정진대사원오탑, 보물 171호)- 약 20분 정도 산을 올라야 볼 수 있는 승탑으로, 크기는 5m로 매우 크며 잘 만들어진 승탑이다.

 

부처님오신날 대웅보전 앞 에 걸린 백등- 봉암사는 부처님 오신날 당일 여명이 밝아 올 때 쯤 백등을 내다 건다.

 

부처님 오신날 봉암사에서 새벽공양을 하는 사람들

 

 

4. 안동 옥산사 마애약사래좌상-

 안동 옥산사 뒤쪽 바위벽에 새겨진 약사여래좌상으로 크기는 작으나 연화대좌에 앉아 우견편단의 법의를 한 잘 생긴 미남 약사불이다.

 통일신라 시대 석공 장인의 솜씨를 볼 수 있는 마애불이다.

 옥산사까지 가는 길은 도로 폭은 좁은데 산으로 많이 올라가야 하므로 운전할 때 조심해야 된다.

 

옥산사 마애약사여래좌상- 밝은 얼굴이 돋보이고, 전체적인 균형미도 좋은 수작의 불상이다.

 

멀리서 본 마애불

 

마애불에서 내려다 본 옥산사와 앞 경치

 

 

5. 안동 이천동 마애불-

  안동시 이천동에 있는 큰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로 머리부분은 별도로 만들어 올린 형태이다.

 

거대한 몸은 큰 자연산 바위에 선각이 되어 있으며 수인은 아미타 수인이고 법의는 통견이다.

 

멀리서 본 마애불의 모습

 

 

6. 대구 동화사 마애여래좌상-

 통일신라 5악 중 중악에 해당하는 대구 팔공산 동화사에 있는 마애여래좌상(보물 243호)은 앉은 자세가 오른쪽 다리를 아래로 살짝 푼 반 유희좌인 것이 특이하고, 수인은 항마촉지인을 한 채 구름문양의 대좌에 앉아 계신다.

 이 마애불은 동화사 일주문 오른쪽 바위에 새겨져 있는데, 현재 주차장을 경유한 사찰의 출입구에서는 아래로 제법 내려가야 볼 수 있다.

 크기는 작으며 조금 높은 곳에 새겨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다.

 

동화사 마애여래좌상

 

마애불 원경

 

 동화사에는 좋은 보물 문화재가 많은데, 현 주차장쪽 사찰 입구에서 마애불을 보러 가는 길에 있는 당간지주, 도학동 석조부도, 금당암 동.서3층석탑 그리고 비로암에 있는 문화재인 3층석탑과 석비로자나불좌상 사진도 함께 올리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금당암 동3층석탑과 석등(보물 248호)- 보존상태도 좋은 수작의 3층석탑이다.

 

동화사 금당암 서3층석탑- 천체적인 균형미와 옥개석 처마 끝이 날렵하게 잘빠져 아주 좋다. 통탑 못지 않다.

 

동화사 당간지주(보물 254호)- 당간지주 머리부분이 유난히 둥글게 조각되어 있다.

 

도학동 석조부도(보물 601호)- 도학동에서 옮겨 온 승탑

 

동화사 비로암 3층석탑(보물 247호)- 탑 사리함의 기록에 따르면 863년(경문왕 3)에 민애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비로암 비로자나불좌상(보물 244호)- 비로자나불의 상징인 지권인의 수인을 하고 있으며, 배 모양을 한 멋진 형태의 광배에는 화불이 많이 조성되어 있고, 전체적인 균형미도 뛰어나고 보존상태도 좋은 불상이다.

 

동화사 대웅전 앞 마당에 걸린 연등

 

7. 칠곡 노석리 마애불상군-

 경상북도 칠곡군 노석리에 있는 마애불상군(보물 655호)으로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협시불은 관음과 대세지보살이다.

 

노석리 마애불상군

 

마애불상군을 보러 올라가는 계단

 

 

8.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경상북도 봉화군 북지리에 있는 마애불좌상(국보 201호)으로 약 4m가 넘는 크기의 불상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다.

 마애불의 조각은 전체적으로 큼직막한 느낌이 드는 수작으로 인근에서 발견된 미륵반가사유상 하반신의 조각 솜씨와 유사한 느낌(크게 각을 하면서도 전체적으로 균형미가 있고 수려한 느낌이 드는 조각솜씨)이 든다.

 통견에 항마촉지인 수인을 하고 있으며 두광과 신광에 화불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 또한 조각이 잘되어 있다.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자리는 큰 절터로 인근에 27개의 절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이곳 바로 인근에서 발견된 북지리 석조반가상 하반신 석물은 북지리 마애여래좌상과 더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문화재이다.

 크게 크게 그러나 수려하게 조각한 솜씨가 돋보이는 이 지역 특유의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경북대학교 박물관에 전시중인 북지리 석반가상 허리 아랫부분- 약 2m 쯤 되는 크기에도 불구하고 균형미가 있으며, 굵고 크게 조각된 것이 시원하면서도 유려함을 가진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이 반가상 석물의 의미는 우리 대한민국 불교문화재 중 국보 중 국보인 금동반가사유상(국보 83호)과 옷주름이나 하반신의 형태가 거의 유사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국보 83호가 백제의 것이냐 신라의 것이냐로 전문가 사이에 많은 논쟁이 있었으나, 비록 아마추어이지만 내 생각에 이 문화재는 당연한 신라의 작품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는 우선 하반신의 형태와 옷주름이 굵고 크게 조각이 된 것이 동일한 장인집단이 만든 작품으로 추정할 수 있을 정도로 유사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이렇게 큰 석물은 옮길 수 없기 때문에 출토지가 신라 지역인 봉화라는 결정적 증거 때문이며, 세째는 국보 83호와 형제처럼 닮은 일본 국보문화재인 교토 고류지 목조미륵반가사유상이 일본서기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도래인인 진하승이 이 사찰 승려이고, 신라에서 불상을 모셔왔다는 기록과 이 나무의 재질이 우리나라 동해안 지역의 소나무인 적송이라는 사실 때문일 뿐 아니라, 네째는 백제 지역에서는 이와 같이 크고 시원하게 비 대칭적으로 옷주름을 조각한 반가사유상 유물이 나온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서산 마애3존불의 협시불인 반가사유상의 옷주름은 좌우가 대칭적인 단순한 옷주름으로 봉화지역의 옷주름과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고 크기도 작다.

 이런 결정적인 몇가지 이유에도 불구하고 국보 83호인 금동반가사유상이 백제의 솜씨라고 계속 주장하는 저명한 문화재 전문가가 있는데 ,이것만은 그 학자가 증거를 무시한 사변적인 주장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하튼 학자는 고집이 조금 세야 되나 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 굵고 큰 주름이 비대칭적으로 흘러내리는 것이 봉화 북지리 석반가상과 쏙 빼닮았다.

 

 

9. 영주 가흥동 마애3존불-

 경상북도 영주시 가흥동 도로변에 있는 마애여래3존상(보물 221호)은 주존불의 원형 광배에 연화문과 화불이 바깥쪽에는 화염문이 조각되어 있으며, 수인은 여원인과 시무외인을 하고 있다.

 3존불은 모두 굵고 크게 조각하여 기품이 있어 보이는 수작이나, 불상의 눈을 누군가가 파버려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아마 조선시대에 마을 사대부나 주민들이 이렇게 했지 싶다.

자기마을 문화재를 지키지는 못할 망정 성리학 이데올로기가 무엇이라고.. 

 

영주 가흥동 마애3존불- 옷주름 표현이 굵고 크게 표현되어 있으며 3존불의 귀가 모두 길다.

 

멀리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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